페드로 마르티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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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미국의 前 야구 선수. 포지션은 투수. 은퇴 이후에는 MLB on TBS에서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양대리그에서 시즌 1점대 ERA와 300탈삼진을 모두 달성한 유일한 투수이며, 역대 최저 WHIP 기록 등 다수의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기록을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타고투저를 기록했던 시대였던 스테로이드 시대에 달성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외계인'이란 별명을 얻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2년간의 복귀 시도와 은퇴 & 은퇴 이후[편집]
2010년 페드로는 필라델피아 필리스와의 1년 계약이 끝났기 때문에 자유계약선수였지만 본인은 '아직 은퇴는 생각하지 않고 있으며, 10시즌도 필라델피아에서 계속 뛰기를 원한다'고 한다. 그러나 결국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고, 2011년에는 필리스 선발진이 충공깽한 수준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페드로가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복귀는 힘들어 보였다.
결국 2010년에는 새 팀을 찾지 못하면서 휴식을 선언했지만 양키스와의 보스턴 홈 개막전에서 진짜로 45번 저지를 입고 시구자로 나와 무지막지한 환호를 받았다. 물론 그린 몬스터에서 나오는 길에 A로드와 인사를 한 것 때문에 몇초 동안 살짝 야유가 나오긴 했다. 참고로 랜디 존슨 또한 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 개막전에서 시구를 하며 기립박수를 받은바 있다. 약물시대를 함께 평정하고 같은 해에 양대리그 사이영 수상의 기록을 세우며 서로 투수 트리플 크라운 등극을 한번씩 방해한(...) 위대한 좌우 에이스가 새 팀을 찾지 못하고 친정팀 개막전에서 시구자로 나서는데 그치는 모습에 많은 올드팬들이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2011년 들어 페드로는 필리스가 아니면 레드삭스로 복귀하고 싶다고 밝혔는데, 한국의 보스턴 팬들은 존 래키 쫓아내고 외계인을 데려오라며 과거 로켓 복귀설 때보다 더한 설레발을 떨기도 했다. 실제로 그 인터뷰에서 보스턴을 언급한 후로 레드삭스 프런트에 도착하는 팬들의 메일에는 페드로와 사인하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고. 하지만 구단 측에서는 그런 가능성에 대해 부정하고 있다.
사실 벅홀츠가 조금씩 유리몸의 기질을 보이는 상황이고, 마쓰자카는 아예 토미 존 서저리, 웨이크필드도 아무래도 너클볼러다보니 로테이션에 구멍이 없다고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서 가능성이 낮긴 해도 불가능까진 아닌 이야기였다. 또한 그의 복귀가 실제로 이뤄진다면 팀 내 투수진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줄 수도 있었다.
결국 그의 복귀는 이뤄지지 않았다.
레드삭스 프런트로 돌아온 것은 2013년 1월. 보통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그렇듯 벤 셰링턴 단장의 특별 보좌로 일을 시작했다. 복귀하자마자 2012년 꼴등팀이 2013년 월드시리즈 우승을 차지하는 감격을 맛보기도 하고, 프런트로써 첫 해는 상당히 기분좋게 보내는 중.
비단 프런트 뿐만 아니라 해설 및 야구 프로그램의 패널로도 활동을 시작했다. 보통 중남미 선수들이 영어가 부족해서 이런 역할을 못 맡는 걸 보면, 어려서부터 의대 가는 걸로 주변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던 그의 영어 실력이 상당함을 알 수 있다. 중남미 특유의 스페인어 억양이 잔뜩 들어간 억양이지만 아래 나오는 글들을 보면 알 수 있듯이 페드로의 어휘는 자유분방하면서도 수준급이다. 보수적인 시청자들은 좀 불만이 있긴 하지만. 특히 최근에는 MLB Network에서 패널로도 활약하고 있는데, 전문용어를 모든 사람들이 알기쉬운 영어로 풀어주면서 자신의 경험을 알려주면서, 자라나는 야구선수들에게 참고가 될 수 있는 지식을 자주 이야기해주고 있다.
해설 및 패널 일을 하게 되면서 선수 시절에는 무시했던 기자들에 대한 존경심이 더 커졌다고 한다. 그냥 의자에 앉아서 편하게 야구 이야기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막상 출연하게 되니 경기 내용, 선수 이력과 스탯과 성적 등 찾아야 할 내용도 너무 많고 그 중에서 자료를 선별해서 말할 내용을 골라내야 하는 등 보통 일이 아니었다고.
양키스에게 계속 안 좋은 성적을 내고 있을 때 '양키스를 내 아버지로 불러야겠다' 라고 한 유명한 발언에서 착안해 그 날의 플레이어를 페드로가 지정해 칭찬하는 'Who's your daddy?' 라는 코너에서는 NLCS 3차전에서 호투한 류현진을 언급하기도 했는데, 전체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한국어 발음에 곤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H와 J 발음이 혼동되는 스페인어 식으로 읽었는지 '현진류'가 '영잉류'로 둔갑하기도 하고 한국어 '아버지' 가 '아부-웻지'(…)가 되는 등.[2]
2020년 9월 18일에 MLB 전체 선발투수 탑5를 골랐다. 비버-디그롬-다르빗슈-커쇼-바우어 순으로 골랐고 다르빗슈의 다양한 결정구를 칭찬했다.기사
2020년 10월 6일에 이런 기사가 올라왔는데, 기자가 Who's your daddy를 설명하면서 페드로가 보스턴에서 뛰면서 양키스전 성적이 유독 안 좋았다며 야알못 티를 냈다. 기자는 1997년 완투승, 1999년 17K 완투승(MLB 역사상 양키스 상대로 17K는 페드로가 처음이자 마지막), 2000년 완봉승 등에 대해서는 존재 자체를 모르는 듯(실로 역사적인 퍼포먼스였는데 그걸 모를 수가 있다니!).[3]
이후 2022년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자신의 천적이었던 뉴욕 양키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망신스럽게 스윕을 당하자(마치 2004년의 보스턴 레드삭스가 뉴욕 양키스에게 3패 후 4승으로 월드시리즈에 진출한 것처럼) 'Who's your daddy?'라고 조롱했다(...)
2.2. 페드로 vs 주요 타자[편집]
페드로가 상대한 타자들의 지표별 1위를 보면 다음과 같다.
- 최다 타석: 데릭 지터 121타석, 107타수
- 최다 안타: 데릭 지터 29
- 최다 홈런: 마이크 피아자 6
- 최다 타점: 게리 셰필드, 호르헤 포사다 12
- 최다 볼넷: 데릭 지터 12
- 최다 삼진: 호르헤 포사다 35
알렉스 로드리게스: 72타석 17안타 1홈런 4타점 23삼진 OPS .730
- 2000년 9월 4일에 페드로는 로드리게스를 4타석 상대하여 출루 없이 3K를 잡았다.
알폰소 소리아노: 53타석 7안타 0홈런 4타점 21삼진 OPS .343
- 알폰소 소리아노는 2003 ALCS에서 7타석 5삼진 OPS 0이라는 굴욕을 당했다.
배리 본즈: 43타석 11안타 1홈런 3타점 8삼진 OPS 1.064
라파엘 팔메이로: 42타석 7안타 0홈런 2타점 18삼진 OPS .515
매니 라미레즈: 41타석 6안타 0홈런 0타점 17삼진 OPS .400
토니 그윈: 36타석 11안타 0홈런 4타점 0삼진 OPS .676
제프 배그웰: 33타석 5안타 1홈런 5타점 9삼진 OPS .641
에드가 마르티네즈: 33타석 3안타 0홈런 0타점 11삼진 OPS .453
마이크 피아자: 27타석 10안타 6홈런 8타점 4삼진 OPS 1.523
새미 소사: 27타석 4안타 0홈런 2타점 15삼진 OPS .422
- 소사는 1996년 5월 6일/1997년 6월 8일 경기에서 각각 3연타석 삼진을 당했다.
- 토마스가 극도로 부진하던 1999년에 토마스는 페드로에게 4연타석 삼진을 잡히는 등 8타석 1안타 5K라는 수모를 당했다. 토마스가 MVP 2위로 부활한 2000년에도 2삼진에 4연타석 아웃을 당하는 등 약했다.
- 이치로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상대하기 어려웠던 투수로 페드로를 꼽곤 했다. 실제로 페드로가 1이닝 9구 3삼진의 무결점 이닝을 기록할 당시 전성기를 달리던 이치로는 그 세 명의 타자 중 하나였다.#
켄 그리피 주니어: 18타석 1안타 0홈런 1타점 6삼진 OPS .233
- 그리피는 2020년에 자신이 상대했던 투수 중 가장 터프한 투수로 페드로를 골랐다.# 그리피는 48홈런을 친 1999년 시즌 5월 12일 경기에서 3연타석 삼진을 당했고 시즌 전체로도 8타석 4삼진 OPS 0이라는 수모를 당했다.
- 벨은 1996년 올스타전에서 대놓고 위로 뜨는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고, 1999년 9월 27일에는 4타석 무출루 3K를 잡혔다.
- 맥과이어의 경우, 정규 시즌에는 볼넷과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하여 겨우 1타수고 그 1타수는 삼진이었다. 1997년/1999년 올스타전에서 2타석 상대했을 때는 헛스윙을 4번이나 하고 파울도 못 만드는 등, 공을 건드리지도 못했다.
3. 수상(기록)[편집]
4. 그의 전성기와 평가[편집]
자세한 내용은 페드로 마르티네스/전성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명예의 전당 입성[편집]
지금의 시점에서는 사이 영 상 3회(양대리그 수상 포함)에 평균자책점 1위만 고스란히 5번 했던 압도적인 전성기를 보낸 레전드에게 명예의 전당 첫 턴 가능성을 논했던 것이 우스워 보이지만, 당시는 랜디 존슨, 그렉 매덕스 등 누적 성적이 좋은 투수가 워낙 많았던 시대라 '첫 턴 입성은 어려울 것 같다.' '80%대 턱걸이할 것 같다.'라는 회의적 의견도 많았다. 그래도 과거 샌디 코팩스처럼 200승에도 못 미쳤지만 단기간에 상당한 임팩트의 피칭을 선보이며 HoF에 간 케이스도 있었기에 역사적인 전성기를 보낸 페드로였던지라 은퇴 당시부터 적어도 입성 자체는 확정적으로 여겨졌다.
결국 2015년 1월 6일 이루어진 기자단 투표에서 존슨, 존 스몰츠와 함께 첫 해 명전 입성을 확정지었다.[4] 누적 성적이 딸려서 득표율은 91.1%로 빅유닛보다는 낮았지만 엄청난 단기 임팩트 덕에 득표율이 80퍼센트 초반인 스몰츠보다는 앞섰다. 식사를 하다가 소식을 접한 페드로는 도미니카 공화국기와 성조기를 양손에 쥐고 흔들면서 신나했고, "나는 절대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나에게 가르쳐준 방법만을 택했다. 나는 깨끗했다." 라는 자부심 넘치는 소감을 전했다.
2007년 쯤에 손윤 기자가 작성한 글에서는 페드로와 코팩스를 비교하며 페드로가 시대를 지배한 먼치킨임을 구구절절 읊었으며, 200승과 3000K를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를 가늠할 중요 포인트로 제시하였다. 1편. 2편. 3편. 여기서 특히 흥미로운 것은, 투수로서 HoF에 입성하는 중요 지표로서 200승 뿐만 아니라 3000K를 제시한 것인데, 실제로 2011년 현재 3000K를 돌파한 선수들은 모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였거나 명예의 전당 입성이 사실상 100%로 점쳐지고 있는 케이스라는 점에서 충분히 일리가 있다.[5]
이보다 앞선 2014년에는 로저 클레멘스,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함께 보스턴 레드삭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쿠퍼스타운 입성이 발표된 뒤에 로켓과 함께 명전에 가고 싶었는데... 하며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5.1. 명예의 전당 통계[편집]
- JAWS - Starting Pitcher (21st)
6. 피칭 스타일[편집]
전성기 기준 평균 구속 90마일대 중반에 최고 구속 98마일까지 찍혔던 포심 패스트볼, 90마일 초중반대 테일링 투심 패스트볼, 80마일대 후반의 커터, 80마일 중반으로 꺾임이 무시무시했던 하드 슬라이더, 80마일대 초반의 결정구였던 스크류볼성 MLB역사상 최고의 마구 중 하나인 서클 체인지업, 두 번 휘는 것 같았다는 70마일 후반대의 리그 정상급 커브까지 구사했던 전형적인 탈삼진형[9] 우완 파이어볼러[10] 였다. 이렇듯 다양한 스터프가 모두 위력적이어서 70마일대 후반부터 90마일대 후반까지 거를 구종이 없었고, 더군다나 그 모두가 구분이 안 되는 똑같은 투구폼으로 방아쇠처럼 당겨졌기에(보스턴에서 팀페이트였던 김병현의 증언) 대약물시대의 타자들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다.
208cm의 키에서 내리꽂는 패스트볼[11] 을 구사한 랜디 존슨급은 아니었지만 작은 체격에 비해 폭발적인 구위를 자랑했던 패스트볼은 구위를 믿고 존 가운데로 쑤셔넣는 경우가 많았지만 바깥쪽 보더라인으로 꽂는 경우도 꽤 있었고 무엇보다도 구속을 능숙하게 조절하여 타자들을 교란했다. 같은 경기에서 96마일과 88~86마일의 패스트볼을 던지며 타자를 교란시켰고 경기 초반에 빠르게/후반엔 느리게 이런 것도 없이 그냥 자기 마음대로 구속을 조절했다.
서클 체인지업은 마치 스플리터나 스크류볼 같이 타자 앞에서 뚝 떨어지며[12][13] 헛스윙을 유도하는 페드로의 결정구이다. 페드로의 체인지업은 엄청난 낙폭으로 땅볼을 유도하는 대신 200K는 기본에 300K도 두 번이나 달성해버렸다.[14][15] 커트 실링의 말에 따르면, 공이 체인지업이라고 느낀 순간, 타자는 이미 헛스윙을 하고 난 뒤라고. 보통 좌타자[16] 상대로 쓰는 체인지업을 우타자들에게도 마구 던졌으나 구위가 심히 하락한 말년에도 체인지업을 던져서 우타자를 삼진을 잡아내는 위엄을 보였다. 존 바깥으로 나가는 척하면서 몸쪽으로 휘어들어오는 무브먼트는 프랭크 토마스같은 역대급 선구안을 가진 타자들도 삼진으로 처리하는 원동력이었다.[17]
체인지업의 임팩트에 가려지지만 커브볼의 위력도 당대 최고였다. 1997년 올스타전에서 나온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페드로의 커브가 페드로에게 효과적인 탈삼진 수단이라 나와있었고, 실제로도 체인지업 못지않게 커브도 결정구로 많이 사용했다. 다만 체인지업이 현재까지도 페드로를 넘을 수 있으리라는 평가를 받는 투수가 거의 없는 것과는 달리 커브는 이후로도 배리 지토나 코리 클루버, 클레이튼 커쇼 등 역대급 커브볼을 던지는 몇몇 투수들이 나왔기 때문에 체인지업에 비하면 부각이 덜 되는 편일 뿐이다.
페드로는 특히나 '작은 체구+인버티드W+강속구+어린 시절 데뷔+많은 이닝'으로 단명하는 투수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고 있었지만 이런 징크스를 깨부수고 역사에 남을 퍼포먼스와 기록들을 남겼고, 실제로도 롱런이라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렇다고 샌디 코팩스나 마크 피드리치처럼 단명하진 않았다.[18] 전성기 때는 구속, 공의 움직임, 제구력, 커맨드, 멘탈적인 측면까지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투수였으며, 랜디 존슨의 구위와 그렉 매덕스의 제구를 합친 피칭을 한다는 평가를 들었다.
투수로서는 작은 180cm의 체격에도 불구하고, 로우 스리쿼터 스로형의 역동적인 투구폼[19][20] 으로 공에 힘을 실어 구위를 효과적으로 극대화했다. 여기에 커브와 커터, 슬라이더, 체인지업까지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는 모든 변화구를 패스트볼을 던질 때와 같은 폼과 팔 스윙 스피드로 던졌기에 타자 입장에서는 속수무책으로 털릴 수밖에 없었다.
볼 배합이나 제구 등을 보았을 때 피칭 스타일 자체가 매우 공격적이었고, 빈볼도 많은 편이었으며, 위협구를 던지면서 1~2볼을 먼저 주고 시작하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타자를 공격하는 투수라는 말을 들었다.[21] 게다가 본인의 한 성격 하는 것 역시 그의 임팩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플레이 스타일이 점점 바뀌었는데, 전성기 시절에는 공의 위력 자체만으로도 타자들을 휘어잡을 수 있었다면, 부상이 잦아지며 구속이 감소함에 따라 점차 커맨드와 컨트롤로 게임을 진행하는 스타일이 되었다. 팬그래프에서 구속을 집계하기 시작한 2002년의 평속이 90.7마일이었고 이듬해부터는 평속이 89마일대로 떨어졌는데, 위기 시에는 순간적으로 95~97마일까지 끌어올리곤 했다. 어쨌든 저 빠르지 않은 평속으로 2002년 기준 이상[22] 선발 투수 중 패스트볼 헛스윙률이 메이저리그 전체 5위였다.[23]
LG트윈스의 이상훈이 주니치를 거쳐 보스턴에 갔을떄 페드로의 피칭을 보고 놀랬던것이 우리들이 경기장이나 방송으로 보는 페드로의 피칭은 자기힘의 60%정도로 밖에 던지지 않는 다는 (당연히 선발투수들 대부분 적당히 힘배분을 해서 던지는게 맞다고는 하지만.....)것이 었다고 한다
지금 활동하는 투수들 중 투구폼이 가장 비슷한 인물은 워커 뷸러와 제이콥 디그롬이라고 할 수 있다. 하체의 움직임은 둘이 거의 동일한데 페드로는 이를 다저스의 옛 방식이라 표현했다. 상체 움직임도 비슷한데 차이가 있다면 페드로는 팔을 대각으로 움직이고 뷸러는 좀 더 수직에 가깝게 움직인다. 디그롬은 팔의 움직임까지 거의 똑같다. 아래 영상에서 페드로는 뷸러에게 동나이대의 자신보다 낫다며 칭찬했다.
6.1. 서클 체인지업[편집]
7. 어록[편집]
시간을 돌려서 15년 전으로 되돌아간다면, 난 버스비 50센트가 없어서 망고나무 아래에서 앉아있었을 것이다. 오늘날 난 뉴욕시의 관심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그 점을 신에게 감사드린다. 출처
2004년, 양키스는 몇번이고 나에게 아버지가 누구냐고 물어보았지만 레드삭스는 그들의 입을 다물어버릴 수 있는 해답을 가지고 있었다. 출처
유격수가 실책을 했다면 나에게 책임이 있다. 타자가 공을 치게 만든 사람이 나이기 때문이다. 출처
나는 절대 지름길을 택하지 않았다. 나는 부모님이 나에게 가르쳐준 방법만을 택했다. 나는 깨끗했다. 출처
8. 이모저모[편집]
- 1971년에 태어난 메이저 리그 선수들 중 가장 높은 WAR을 기록했다. 2위는 이반 로드리게스인데 이 둘은 유이한 1971년생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이다.
- 한국에서는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며, 그 출처로는 1999년 ALCS의 페드로 선발 때 13:1 대패를 당한 조 토레 당시 양키스 감독이 '인간이 아닌 자에게 졌으니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인간이 아니니까 부끄럽지 않은 걸라고 했다는 설이 흔히 제시되곤 한다. 하지만 이는 케네디 스코어와 마찬가지로,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출처를 찾을 수 없는 낭설이다. 외계인이란 별명도 외국에서는 아무도 모른다. 외국에서는 별명이 Pedro el Grande[25] 또는 애칭으로 'Petey'라 불릴 뿐.
- 2020년 5월 7일 MLB.com이 선정한 각 팀 팬덤이 가장 싫어하는 선수(favorite nemesis) 중에서 모두의 예상대로 양키스 팬들이 가장 싫어하는 선수로 선정됐다.[26]
- 페드로의 45번은 오랫 동안 노마 가르시아파라, 로저 클레멘스, 웨이드 보그스, 커트 실링과 함께 비공식 영구결번화하여 아무도 달지 못했지만 2015년 7월 29일 드디어 영구결번이 이루어졌다.
- 보스턴 시절 노마 가르시아파라와 함께 펜웨이 파크의 명물이었다. 이렇게 노마에게 테이프로 꽁꽁 묶여버리기도 했다.
- 하지만 에이스답게 동시에 상당히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굉장히 차갑고 냉소적인 인터뷰를 즐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페드로가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을 할 때면 언제나 그를 둘러싼 기자단의 분위기가 싸늘해졌을 정도. 2003년 ALCS에서의 카림 가르시아와의 빈볼시비 이후의 인터뷰를 보면,
Karim García, who's Karim García? I have no respect for that guy. I don't have anything to prove to that guy. He needs to be forcing himself to come up to where I am, to my level. When you talk about Jeter, Bernie Williams, Paul O'Neill, guys like that that you really tip your hat, that you can understand. But guys like Karim García, what? So what? Who are you? Who are you Karim García to try to test Pedro Martinez, a proven player for ten years? That's what I don't understand. Why would I hit Karim García?
[27]
- 2003 ALCS에서 뉴욕 양키스와 벤치클리어링 중 자신에게 달려드는 당시 74세인 돈 짐머 코치를 내동댕이치는 바람에 논란이 일었다. 당시 현지에서도 어떻게 팔순을 바라보는 노인에게 폭력을 행사하냐고 말이 많긴 했었다. 이후 2009년에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양자가 인터뷰를 했는데 페드로는 자신의 잘못이긴 하지만 덤벼드는 짐머가 자신의 어머니를 모욕했고,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그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으며 사고였다고 했다. 짐머는 처음에 사고라는 말에 반대하며 페드로는 쓰레기라고 했지만 이후 모든 게 자기 잘못이고 페드로는 잘못이 없다는 말을 했다. 또 이 인터뷰를 하며 페드로는 뉴욕 언론들이 자신을 헐뜯고 허위사실을 유포하며 기사를 마구 써제끼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 같은 중남미 출신 레전드이자 페드로가 전성기를 누릴 때 양키스의 주전 포수였던 호르헤 포사다와 사이가 끔찍하게 나쁘다.
- 2004년 9월에 양키스에 한번 떡실신당하고 한 말은 이후 양키스 팬들이 인터리그 메츠전이나 월드시리즈에서 페드로를 만날 때마다 외치는 Who's your daddy 챈트가 되었다. 본인도 그걸 아주 잘 아는지 은퇴한 지 한참 지난 2022년에 양키스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상대로 ALCS에서 스윕패를 당하며 탈락하자 Who's your daddy now?라며 조롱했다.
They beat me. They're that good right now. They're that hot. I just tip my hat and call the Yankees my daddy.[28]
[29][30]
- 2013년 2월 한 인터뷰에서, 현역 시절 내 빈볼의 90%는 의도적이었다라고 발언했다는 기사가 나와서 야구 팬들, 특히 양키 팬들에게 좀 많이 까였다. 하지만 이는 국내
기레기기자들의 번역 미스[31] 로 실제 발언은 "Probably 90 percent of them (was intentional). But, it was always retaliation for my teammates." (아마 90%는 의도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다 팀 동료들이 당한 보복 차원에서 그런 것이다)으로 나와있다.원문 하지만, 빈볼도 제구력이 뒷받침되어야 정통으로 꽂아넣을 수 있는 것이고 현역 시절에도 탈삼진에 비해 볼넷이 적기로 유명했던 선수라 그가 던진 (비보복성) 빈볼들 중 의도적이지 않은게 과연 얼마나 될지 의심하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위에서 보다시피 성격도 한 성격 하고.
- 2011년 초에는 스미스소니언 미술관(Smithsonian Gallery of Arts)에 초상화가 전시된 메이저리그 야구선수 50여명 중 최연소이자 로베르토 클레멘테, 새미 소사, 후안 마리샬 등에 이어 중남미 선수로서는 4번째로 초상화가 전시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 당시 복귀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입장을 드러내기도 하였고, 가족들에 대한 생각에 연설 도중 울먹이기도 했다.인터뷰 번역글
- 인간이기를 거부했을지언정 약물을 하진 않은, 스테로이드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한 선수.[32] 2000년대 이후의 도미니칸 투수들 사이에서는 베이브 루스에 준하는 존경을 받고 있다.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선발 투수인 카를로스 마르티네즈는 유망주 시절에는 작은 체구에서 강속구를 던질 수 있다는 점과 남미 선수라는 공통점 등으로 인해 한국의 카디널스 팬들에게 짭드로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더 많이 불렸고, 지금 대세로 불리는 별명은 이름의 줄임말인 C-MART. 그리고 지금은 사망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요다노 벤추라도 작은 키에서 나오는 100마일을 상회하는 패스트볼로 인해 작은 페드로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 현지 시각으로 2017년 9월 27일에 그의 아들인 페드로 마르티네즈 주니어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아버지와는 다르게 투수가 아닌 3루수. 80만 달러의 계약금과 함께 미국에서 장학금도 지원 받는다고 한다. 스카우트들에 평가에 의하면, 타격 잠재 능력이 좋은 3루수라고.
뉴욕 메츠
-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일본 애니에서 이름이 언급된 적이 있다. 너에게 닿기를 애니에서 여주인공인 쿠로누마 사와코 가 구하고 남주인공인 카제하야 쇼타 가 입양하기로 한 유기된 강아지의 이름을 정하려고 고민하는데 지나가던 체육선생 이자 부담임인 핀 이 빼드로 마르티네주 라고 내뱉자 사와코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강아지 이름을 마루쨩 이라고 짓는다.
- 보스턴 시절 팀메이트였던 김선우를 꽤 예뻐했다고 한다. 자기와 투구폼이 비슷해서 그랬다나... 그래서 자주 조언을 해주곤 했는데 '투수코치 말 듣지 말고 너 던지고 싶은대로 던져라' 등의 얘기를 해줬다고.[33]
- 방송에서 "나에게 최고의 피치는 스트라이크 원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는 것이 투수에게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34]
- 2021년 6월 기준으로 이 문서는 명예의 전당 헌액자들 중 유일하게 개인 분류를 갖고 있었으나, 2023년 8월 현재 1990년대부터 10년마다 계보를 잇는 4대 혹은 5대 슈퍼에이스들의 문서에 전성기에 관한 개인 분류가 조금씩 누적되고 있다.